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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글쓰기. 제목이 영....

비평가는 천재를 팔아먹는 둔재들이다.-템즈’

GoodMorningLonDon | 기사입력 2019/06/20 [01:29]

다시 글쓰기. 제목이 영....

비평가는 천재를 팔아먹는 둔재들이다.-템즈’

GoodMorningLonDon | 입력 : 2019/06/20 [01:29]

백남준의 미공개 작▲     © GoodMorningLonDon

 

뱍남준 미공개작-눈, 코, 입이 소형 티비로 형상화돼있다.▲     © GoodMorningLonDon




어떤 작가 혹은 시대에 이름을 붙여놓고 그 대상에 대한 형편없는 싸구려 말 펀치를 날리는 것이 비평가의 직업이겠지만 예술종사자들이 이들과 거래를 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둔재들의 입놀림에 따라 예술작품의 가격이 매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가난한 예술쟁이가 아닌, 빌리어니어쯤 되는 예술가가 있다면 작품 값을 스스로 매길 수도 있겠지만.


왜 백남준의 이해 없이는 21세기 예술을 예측할 수 없으며 20세기 후반 예술품들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인가?

텔레비젼 몇 대 쌓아놓은 것이 미술사조를 바꿀 만큼 대단한 예술작품인가?

왜 현대 영화조차 백남준의 이해를 배경으로 삼아야 하는가?

여느 예술작품 감상보다도 백남준 작품 앞에만 서면 형편없이 초라해지던 나 자신의 모습, 자신의 박제된 모습을 티비화면을 통해 응시하고 있는 부처같다고나…만약 내가 백남준이라면 인류 문명의 몰락의 상징이라고 불려지는 9.11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하려 했을까.

9.11 사건은 학계, 종교계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까지 정신적 후폭풍이 대단했으나 유독 예술계만이 강 건너 불구경 식으로 그 사건을 대했다. 일부에서는 그런다. ‘영화 속보다 더 엄청난 사건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영화감독들이 찍을 것이 없다고.’ ‘눈앞에서 죽어가는 가족과 동료 앞에서 한없는 무능력을 자각했던 인간들이 무슨 선한 것을 만들겠다고.’

과연 그래서일까? 그들의 말대로 예술이란 대재앙 앞에서는 사치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평생 공산주의자로 인류학에 헌신했던 레비스트로스가 예술활동을 인간 생활 가운데 가장 소모적 행동으로 비난해오다가 ‘인생에서 해볼 만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예술이라는 모험이다.’라고 말 한것은 죽음을 앞둔 백살 노인의 치매발언이었나?

21세기를 대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구호인 ‘다양성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속에 숨겨진 비겁함을 겁 없이 지적하는 김관성 목사의 광야의 외침에 적극 찬성표는 던지고 있으나….객관적이고 절대적 진리 시대로 돌아가기 위해 암흑시대로 낙인찍힌, 기독교가 주름잡던 중세 때로 가자는 것 같기도 하고…(내 사랑하는 후배 김관성 목사의 특징을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황제를 눈밭 속에 3일을 무릎 팍 끓혀놓던 교황의 권세를 탐낼 만한 배짱과 실력 있는 젊은 목사다.)

1969년 미국에서 발표된 EASY RIDER가 그로부터 30년 후인 1999년 한국에서도 개봉됐으나 ‘고래사냥’ 수준의(고래사냥이라는 영화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영화 대부분이 개인의 감정을 묘사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지 사회의 흐름을 바라보는 방식으로는 서툴고 서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영화에 익숙해 있던 한국 관객들이 소화해내기는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적과의 대치 상황에서 적과 다른 이념무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생존수단이다. 반세기 넘게 남북이 적이 되어 총구를 겨누고 있는 현실 앞에서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한다.’를 모토로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는 적의 이념까지 존중해줘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직면한다. (사고의 유연성을 위해서도 남북이 통일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술가는 무능한 것이 아니라 시대를 앞섰기 때문에 외로울 뿐이다.-템즈’

부르크너 자신이 ‘본인 작품은 천 년 후에나 알아줄 것’이라는 말이 아직은 천 년이 안 되었기 때문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는 주절거림으로 나를 안위한다. 현대 21세기를 지배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단적으로 표현한 백남준의 미공개작품을 소개하는 것도 이 글을 읽는 재미가 될 듯하다.

법정과 같이 자발적 청빈함을 내세울 만한 분들이야 유명세라도 있지만, 나처럼 강요된 청빈함이 습관이 된 사람들의 공통점은 제 분수를 안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이다.
예술 작품을 집에 걸어둔다는 생각은 에당초 가져볼 생각조차 해본 적 없지만, 우연히 영국 땅에서 보게 된 백남준 작품을 보는 순간, '내 밑바닥에 물심이 작지안구나...'를 세삼 깨닫는다. 복사품마저 살 형편이 안되는 상황에서 원작품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말해주고 싶은 대목이다.

언뜻 보면 아이들 낙서 같은 그림, 영국 카부츠에서 보게 되는 5파운드면 살 수 있는 그림들보다 더 형편없이 그려진 작품이 왜 나의 물심이라는 야성에 불을 지폈는지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마치 어떤 못 생인 여인을 첫눈에 보고 성욕을 느낀 것처럼…

익산 황등(나훈아의 고향역 배경 동네)출신이 시애틀 상공에서 내려다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머릿속을 관통하는 권총알이었다면 지인의 집에서 맞닥뜨린 작품은 내 가슴에 대포알 같은 시원스런 구멍을 뻥 뚫어 주었다.

인간의 최고 발명품인 언어가 스스로 그 권위를 무너뜨리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감각기관들이 별 볼일 없이 프로그램된 신경조직연결망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작품, 인간이 스스로 세워놓은 인간 자존의 허상을 어느 엑스레이보다 더 선명하게 담고 있는, 백남준의 다른 작품인 TV 부처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백남준의 유머를 볼 수 있다는 것, 그것보다 더 심장 떨리게 한 것은 그 배경에 자리한 엄격함으로 훈련된 노예술가의 숙명의 고독….인간의 문명에 대한 씁쓸함. 백남준은 9.11 이전 이미 수년, 아니 수 십 년 전부터 문명에 대한 예언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신의 대리인이었던 무당과 마찬가지로 진리의 세계를 본 자들의 예지능력이 인간사 오만 잡일에 일희일비할 수 없는 숙명인 탓이리라.

이제는 흔적조차 사라진 뉴욕 쌍둥이 빌딩 자리에 기념비 하나 세워두는 것으로 9.11에 대한 예의가 끝나는 것인가. 기억만으로도 아픈 사건이기에 ‘이제는 잊어야 할’ 대상이 된 것인가.

담배갑만한 것이 냉장고 가격보다 비싸다.. 아프리카 5인 가족 2년 치 식량비를 넘어서는 돈이 휴대폰 하나 값으로 2년도 안 되어 사라진다. 그 휴대폰을 수 억대씩 만들기 위해 공장은 돌려지고 그로 인한 배출가스로 기후변화는 아프리카에 가뭄을 가져오고…덕분에 그들은 굶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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